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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트러블

아시아 지역 정체성 상상과 탈중심의 문화지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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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신애, 『아시아 트러블 아시아 지역 정체성 상상과 탈중심의 문화지리학』, 앨피, 2018.8.



토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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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시아 트러블』은 식민지기를 통과하며 학습·수행된 ‘탈중심적 상상력’이 식민지 말의 문학과 담론적 실천을 통해 발현된 양태를 그려낸 작업이다. 이는 그간 주목의 대상이 되어왔음에도 여전히 ‘단절’ 혹은 ‘예외’로 취급되었던 식민지 말의 담론장을 이전 시기와의 사상적 연쇄 속에서 읽어내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연속성을 담보하는 것은 ‘자본의 팽창’과 ‘사회주의’인데, 이것들은 전쟁기의 ‘틈새’에서 ‘자유주의, 세계시장,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등을 근간으로 하는 다른 지역-정체성 상상으로 이어지게 된다. 때문에 식민지 말의 폐색적인 정치-문화적 상황에도 (어떤)‘식민지인’들은 제국의 통치 권력이나 대동아전쟁기의 지역질서 등이 요구했던 직분 및 정체성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었고, 오히려 제국이 설정한 국경선을 넘어서는 ‘지역-정체성 상상력’을 파편화된 형태로나마 남길 수도 있었다.

이러한 틀 속에서 저자는 식민지인들의 신체에 각인되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본의 운동’과 ‘사회주의’의 흔적을 1920~30년대 텍스트 속에서 추출하여, 식민지 말 문학에서 발견되는 이질적인 상상력과 연결한다. 이를 통해, 대동아전쟁기의 아시아는 제국 일본의 영토화 된 질서가 지배하는 고정된 공간이 아니라 복수의 지정학적 전망이 교차되며 흔들리는 공간으로, 식민지인은 제국적 주체를 욕망하며 다만 ‘국민’으로 순치되는 존재가 아니라 통치의 기획에 교란을 일으키는 존재로서 부상시키고자 한다. 이는 식민지인을 ‘대상’이 아니라 ‘행위주체’로서 그려낸다는 저자의 의도가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위와 같은 관점은 우선 기왕의 식민지 연구가 주목해 온 두 개의 경향을 이어받으면서도 그것이 직면한 문제를 상대화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첫 번째는, 일본의 ‘제국사’ 연구의 성과들을 참조하며 제국/식민지의 통치성과 그 연관·대응에 주목해 온 연구이다. ‘제국사’ 연구는 동아시아 세계를 하나의 지역으로 파악하면서 ‘본국’의 통치체제와 식민지·점령지의 그것이 상호간에 미친 영향을 문제 삼으며 등장했다. 제국이라는 틀 아래에서, 경제사, 정치사, 문화사의 영역을 횡단하며 ‘내지’와 복수의 ‘외지’ 사이의 구조적 연관을 해명하고자 한 이 연구들(일본의 ‘제국사’ 연구의 이념과 전개, 비판에 관해서는 홍종욱, 「일본 학계의 ‘제국사’ 연구」, 『역사와 현실』92, 한국역사연구회, 2014 참조.)은, 한국(문학)사 영역에서 식민지 조선에서의 통치술의 변화와 역학, 국가/전쟁 이데올로기의 양상과 변폭, 비교식민지적인 관점의 도입 등과 같은 다대한 성과들을 산출했다. 하지만 이들 연구에 대해 “일본을 중심에 두고 발상하는 틀을 강화하는 듯한 논의가 다수를 점하”게 되어버린다는 비판 또한 일찍이 제기된 바 있다. 요컨대 국민국가의 이념으로 설명할 수 없는 요소들을 ‘제국적인 것’으로 처리함으로써, 제국 체제를 강화·고정된 것으로 사념하게 만든다는 비판이다. 대동아전쟁기의 아시아를 ““다방면으로 횡단·교차하는 복합적 흐름의 일부”이자 복수의 담론·체제·이데올로기들이 경합하는 열린 장소”로 이해한다는 것은 이러한 편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라고 하겠다.

두 번째는, 식민지 말의 전쟁동원과 담론장을 근대 국민국가 주체 형성의 시원적 장소로 보고 그것의 픽션성을 강조하는 ‘국민국가론’이다. 국민으로서의 일체성을 들어 국민화를 진행하는 한편, 국민 사이에 서열에 기초한 경계선을 긋고 마이너리티를 ‘타자’로서 차별하고 배제하는 국민국가의 구조가 폭로되면서, 그 기원과 픽션성이 극명한 형태로 드러난 시기로서 식민지 말이 주목되었다. 특히 한국의 경우, 이민족(異民族)의 지배 하에서 ‘국민-되기’를 요구받았던 사정과 함께, 해방 후 냉전 체제 하에서 다시 한 번 유사한 과정이 반복되었다는 측면에서, 이와 같은 메커니즘은 해부의 대상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일국사의 관점에서 암흑영역으로 여겨지던 식민지 말의 문학은 국가의 발견, 혹은 제국적 주체형성의 장으로서 등장하였으며, ‘국가’와 ‘국민’과 ‘민족’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모든 장치들과 그것의 메커니즘, 또한 그 아래에서 산생된 문화 생산물에 대한 재검토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여러 성과들에도 불구하고 ‘민족’과 ‘국민’이라는 두 개의 주권적 주체가 부딪히는 장소로 이해하는 관점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식민지 말의 문학을 마주한 이는 판사나 검사, 혹은 암호해독가와 같은 위치에 서게 되는 경향도 강해지게 된다. 저자는 이러한 위치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요컨대 『아시아 트러블』은 식민지 문학자들의 '상상력'이 가진 '가능성'을 최대한도로 끌어내면서도, 그것의 가능성을 주권적 존재에 의탁하지 않는 방식으로 그려내고자 하는 것이다. 가령 저자가 묘사한 식민지 말 문학자들의 ‘다른 동아’나 ‘가상의 공동체’는 국가나 민족으로 환원되지 않는 성질의 것이다.

이와 같이 『아시아 트러블』이 설정한 구도와 해명의 지점은 위와 같은 식민지 연구의 두 흐름이 합류·종합되는 길목에 서면서도, 또한 그 과정에서 노정된 문제를 넘어서기 위해 고안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서술에 압축적으로 드러나 있다.

"식민주의와 민족주의의 틈, 또는 식민 주체의 형성과 소멸, 그 사이의 동요와 불안이라는 차원"에 집중함으로써 “안과 밖의 경계가 모호해진 식민지의 일상” 및 “그것을 넘어서기 위한 사상적 곡예(曲藝)의 흔적”들을 좀 더 꼼꼼히 검토할 필요가 있으며, 아울러 “제국-식민지 관계의 불균등성을 발화의 입장에 각인”한 채 당대 헤게모니에 침투하여 “제국-식민지의 관계를 변화시키고자” 했던 식민지인들의 “담론적 실천전략”을 되짚음으로써 당시 아시아 공간에 내재된 중층성·역동성 및 주체의 분열 양상들을 가시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하신애, 『아시아 트러블』, 앨피, 2018, 22쪽.)

하지만 무엇보다 식민지 말 문학에 나타나는 '탈중심적 상상력'을 ‘국가’와 ‘자본’이 맺는 관계와 동학 속에서 이해함으로써, 새로운 문제영역을 드러낸 점이 이 연구의 가장 중요한 의미라고 생각한다. 반복하다시피, 『아시아 트러블』에서 ‘자본’ 혹은 ‘자본의 운동’은 대동아전쟁기의 제국 일본과 아시아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로 설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식민지인들이 수행해왔으나 제한될 수밖에 없었던 ‘범세계적 정체성 및 연대’의 상상력이 모습을 드러내는 ‘틈새’ 역할을 떠맡고 있다. 이하에서는 이 ‘틈새’를 검토함으로써 몇 가지 논점을 이끌어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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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선 『아시아 트러블』이 다루고 있는 1940년대의 정치경제학적 상황에 대해 살펴보자. 저자는 이 시기를 반서구주의·반자본주의·반개인주의·반사회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신체제의 수립기이자 광역경제를 표방한 대동아공영권이 구상되어 폐색된 지역질서가 정착되어가는 시기로 규정한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제국의 정치적 의도와는 온전히 겹쳐지지 않는 아시아에 대한 상상을 자극하는 기획이기도 했다는 점이 강조된다. 동아신체제 선언에서 대동아공영권에 이르는 기획은 “기존 중심성에 대한 ‘해체’ 및 ‘재중심화’의 작업이 추진되었던 전환기의 정치적 순간”이며, 때문에 복수의 지역질서나 정체성들이 상상되는 “일종의 틈새”가 열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단 국가와 통치 질서의 재정의라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국가의 재정의가 자본의 팽창과정과 겹쳐져 있다는 사실이다. 저자가 설명하고 있듯이, 근대 자본은 제국의 팽창과 나란한 궤적을 그려왔으며, 전자본주의 생산관계의 굴레로부터 노동력을 풀어내어 자본주의적 임금 노동자들을 대량으로 산출했다. 이들은 생산체계를 유지하는 산업예비군으로 제국에 한번 등기된다. 하지만 “자본의 팽창은 제국 형성의 공모자와 같은 입지를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정 시점이 지나면 오히려 제국의 체제가 지닌 모순을 가시화하거나 제국의 지정학적 배치를 요동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49) 여기에서 강조되는 것은, 근대 자본의 파괴적 속성이고, 제국의 확장에 공모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설정한 권역을 넘어서려고 하는 자본의 세계 지향적 속성이다.

『아시아 트러블』을 관통하는 위와 같은 ‘국가’와 ‘자본’의 관계 설정은, 자본이 만들어 내는 ‘비결정성’을 오키나와 문제와 접속시킨 도미야마 이치로의 문제의식과도 연결된다. 도미야마 이치로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근대국가와 자본주의가 맺는 이중적인 관계에 주목한 페르낭 브로델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자본의 운동을 축으로 두지 않는 근대사는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자본은 국내라는 공간을 조직하지 못한다. 주권제도가 정의한 영토나 국민과는 달리 자본은 언제나 정의되지 않는 비결정성(탈영토화)을 만들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이 비결정성을 결정하고자 국가는 끊임없이 새로운 국가로서 재정의(재영토화)된다. 국경선이란 이러한 결정과 비결정이 되풀이되는 재정의운동이고, 선을 넘는 자본이나 선을 긋는 국가가 아니라 "둘 중 어느 쪽도 아닌 지면 위에서 나아가"는 동태(動態)다.(도미야마 이치로, 심정명 역, 『유착의 사상』, 글항아리, 2015, 131쪽.)

자본의 운동이 갖는 비결정성과 그것을 결정하고자 하는 국가의 재정의 과정이야말로, 제국 일본의 지리적 팽창과 나란한 사태임을 위의 인용문은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제국과 자본의 운동 자체에 대한 비판의 가능성을 ‘가장자리’, 즉 “둘 중 어느 쪽도 아닌 지면 위에서 나아가”는 동태에서 발견해내고자 한다. 이에 따라 도미야마 이치로는 ‘소철지옥’으로 상징되는 오키나와 제당업의 붕괴과정 속에서 부상한 구제론의 잠재적 가능성과, 오키나와에서 흘러나온 유민(流民)을 광역경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다시금 임금노예로서 붙들어 두려는 제국의 인종주의에 관해 논한다. “이 인종주의는 유민을 동인으로 하면서도 이를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말살하고, 광역경제가 당연히 성립하는 양 자연적 토대를 확보한다. 그리고 소철지옥을 끌어안은 오키나와는 이러한 대동아공영권의 영토에서는 새로운 제국의 동인이면서도 생산을 담당하는 장소로서 기입되는 일 없이 그저 임금노예로 존재한다.”(도미야마 이치로, 심정명 역, 『유착의 사상』, 글항아리, 2015, 210쪽.)

이와는 달리, 『아시아 트러블』은 국가의 영토화를 비껴나는 자본의 비결정성을 더욱 강조한다. “자본의 흐름은 "민족과 상관없이 무차별적으로 적용되는" 등가교환 및 사유화의 속성에 의거함으로써 식민지인들로 하여금 국적이나 출신이 문제가 되지 않는 '세계시장'의 영역으로 거주지를 확장하고, 이를 통해 제국보다 넓은 행보를 지닌 코즈모폴리턴으로 존재하도록 부추겼다.”(191) 이러한 전제 위에서, 저자는 “일상생활에서의 소비실천”을 통한 제국 체제로부터의 이탈에 주목하면서, “소비를 근간으로 하는 경제 행위주체로서의 위치”가 가지는 탈중심적 위상을 강조한다.

이러한 ‘소비자적 정체성’이 가지는 탈중심적 위상에 대한 평가는 물론 정치적 자율성이나 사상적 전망을 박탈당한 1940년대 조선의 상황을 고려한 것이다. 또한 저자가 가라타니 고진의 언급을 전거로 삼고 있듯이, 상품시장에서 언제나 수동적 존재(노예)일 수밖에 없는 노동자가 노동자로서의 규정성을 소거시키고 유일하게 주체로 나타나는 곳은 ‘소비’의 장소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설정한대로 ‘행위주체’로서의 식민지인이라는 위치는 제국의 통제를 벗어나 소비하는 주체로서만 포착할 수 있었던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문학 텍스트 위에 새겨진 소비행위가 제국으로부터의 이탈이나 통치에 대한 위반을 넘어서, 얼마나 많은 이들의 삶을 대표할 수 있는지이다. 이것은 과연 누구의 이탈일까.

이 물음은 저자가 주목하는 식민지 말의 기행문과 문학 텍스트들이 대체로 제국의 권역 내지는 점령지로의 이동이나 횡단을 제재로 삼고 있는 것과 관계된다. ‘동아 신질서 건설’ 발표 이후에 실린 숱한 기행문과 개척서사, 유라시아 횡단 서사들은 조선인들의 대규모 이주를 전제로 기술 가능하게 된 것들이다. 그리고 이 이주는 세계시장과의 접속을 가능하게 했던 틈새, 즉 ‘자본의 팽창’과 ‘국가의 재정의’가 얽히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물론 저자가 지적한대로, “식민지 내부에도 다양한 계층이 존재”하는 만큼, ‘식민적 이동’ 또한 하나의 유형으로 일반화할 수 없다. 때문에 어떤 피식민자들에게는 이 공간 이동이 “코즈모폴리턴·민족주의적 디아스포라와 같은 초국경적 주체의 입지”(29)를 확보하게 해주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또한 반대로 ‘자본의 이동’을 통해 ‘세계시장’에 접속하는 주체가 있다면, 그 곁에는 같은 동력에 의해 제국의 체제에 포섭되는 주체가 나란히 있을 것이다. 소비실천, 자본의 운동에 몸을 실었던 이들이 마침내 도달한 곳이 대동아공영권을 초과하는 세계시장일 수 있다면, 어떤 이들이 도착한 곳은 제국의 중심부나 총구가 겨누어진 군대 옆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고 할 때, 아시아의 지역질서에 교란을 일으킨 것으로 여겨지거나, 그것을 기도했던 일군의 식민지 말 문학이 떠맡는 제국 비판의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 사적 공간의 코즈모폴리턴, 세계시장과의 접속을 꿈꾸는 코즈모폴리턴의 형상을 '미학적 자유주의'라는 차원에서 이해할 길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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